사업계획서 한 줄 적어보려다 정책자금 대출 서류 더미에 묻혀버린 몇 달간의 기록

사업계획서 한 줄 적어보려다 정책자금 대출 서류 더미에 묻혀버린 몇 달간의 기록

예비창업패키지 문턱에서 스마트팜이라는 탈출구를 발견했을 때

처음에는 그저 내 사업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정부지원사업 공고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말하는 예비창업패키지 요강을 내려받았는데, 한글 파일 첫 페이지부터 숨이 턱 막혔다. 기술성, 혁신성, 성장 가능성 같은 단어들이 가득 찬 표들을 보면서 내가 쓰려는 카페나 소규모 유통업 같은 평범한 아이템으로는 서류 탈락이 뻔해 보였다. 그러다 우연히 스마트팜코리아 홈페이지를 보게 되었고, 정부가 스마트농업 쪽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지원해 준다는 풍문을 들었다. 와사비나 샐러드 채소를 키우는 컨테이너식 스마트팜을 하면 흙 한 줌 안 묻히고 기계가 알아서 키워주니 직장을 다니면서도 부업처럼 할 수 있겠다는 얕은 생각이 들었다. 네토그린 같은 스마트팜 전문 기업들의 설명회 글을 보니 평당 수익률이 얼마니 하는 장밋빛 숫자들만 가득해서, 그 길로 관련 정책자금 대출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중진공 경기남부지부 대기실에서 마주한 현실적인 온도 차이

스마트팜 설비를 올리려면 결국 땅도 있어야 하고 컨테이너 동을 들여오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업체 견적을 받아보니 최소 1억 2천만 원에서 1억 5천만 원 선이었다. 내 수중의 푼돈으로는 턱도 없어 결국 국가지원사업의 힘을 빌리거나 대출을 받아야 했다. KOSME(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서 청년전용창업자금이나 기업 정책자금을 준다길래 무작정 상담 예약을 잡았다. 예약 당일, 수원에 있는 경기남부지부를 찾아갔는데 상담 대기 시간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번호표를 쥐고 낡은 가죽 소파에 앉아 있으니 양복을 입은 중장년 사장님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처럼 청바지에 백팩을 메고 온 젊은 사람은 거의 없어서 시작부터 기가 죽었다. 내 차례가 되어 상담 창구에 앉았는데, 담당 직원은 생각보다 무척 건조했다. 농지 임대차계약서는 준비되었는지, 실제 영농 경력은 얼마나 되는지 묻는데 아무것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냥 아이디어와 열정만 가지고 찾아온 철부지가 된 기분이었다.

일반 보증서대출과 사업자마이너스통장 사이의 메워지지 않는 격차

직원은 나 같은 초보 창업자에게는 일반 KOSME 직접 대출보다는 차라리 지역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서대출을 알아보거나 시중은행의 사업자마이너스통장 같은 신용대출을 섞는 게 현실적일 수 있다고 넌지시 말했다. 정책자금은 신청자가 너무 몰려 예비심사 결과가 나오는 데만 평균 3주 이상 걸리고, 그나마도 농업법인 형태가 아니면 지원 한도가 깎인다는 설명이었다. 터덜터덜 돌아와 시중은행 창구에 물어보니, 사업자등록증을 낸 지 얼마 안 된 신규 사업자에게는 마이너스통장 한도도 몇백만 원 수준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1억 원이 훌쩍 넘는 스마트팜 기계 값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보증서대출을 받으려면 또 다른 보증기관의 심사를 거쳐야 하고, 보증료율도 매년 몇 퍼센트씩 따로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머리가 아파왔다.

스마트팜 설명회에서 느꼈던 미묘한 찝찝함과 괴리

대출 통로를 찾느라 머리를 싸매는 동안에도 스마트팜 분양 업체에서는 계속해서 안내 문자가 왔다. 한번은 서울 근교에서 열린 스마트팜 창업 설명회에 참석했다. 강사는 아주 유창한 솜씨로 “정부 자금 80% 지원 가능”, “수확물 전량 수매 보장” 같은 문구를 띄워놓고 설명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그럴싸했지만,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분위기가 묘해졌다. 한 참석자가 “만약 한여름 폭염 때문에 전기세가 수백만 원 나오거나 병충해가 돌면 수매 보장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강사는 그런 특수 상황은 재해보험이나 개인 관리의 영역이라며 얼버무렸다. 결국 기계와 시스템을 파는 업체 입장에서는 일단 분양만 시키면 끝이고, 그 이후의 대출 이자 상환과 운영 위험은 오롯이 내 몫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그제야 뼈아프게 다가왔다.

서류 뭉치를 가방 깊숙이 넣어두고 길을 잃은 생각들

결국 신청하려던 예비창업패키지 마감일은 그냥 지나가 버렸고, KOSME에서 받아온 자가진단 서류 뭉치는 방구석 책상 서랍 속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스마트팜으로 돈을 벌었다는 뉴스나 유튜브 영상을 볼 때마다 솔깃하긴 하지만, 당장 매달 나가야 할 이자 비용과 불확실한 수확량을 생각하면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원래 계획했던 평범한 무인 매장이나 소매업으로 돌아가자니 그것 역시 레드오션이라 망설여진다. 정부 지원이라는 단어가 주는 달콤한 환상에 빠져 몇 달 동안 헛물만 켠 것 같아 속이 쓰리지만, 한편으로는 무턱대고 몇억짜리 대출 도장을 안 찍은 게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이 고민이 언제쯤 끝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댓글 4
  • 정말 공감되네요. 제가 지역 특자금 신청할 때도 비슷한 경험 때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 스마트팜 관련 정보 얻으려고 설명회에 간 거, 생각하면 아직도 당황스럽네요. 땅 비용 때문에 결국 정책자금까지 알아봐야 하니까.

  • 스마트팜 기계 가격에 비해 자금 지원 옵션이 너무 제한적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수확물 수매 보장 부분에서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 스마트팜 생각하니까 괜히 마음이 복잡해지네요. 기계 가격도 비싸고, 운영까지 잘해야 수익이 생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