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정말이지 하루 종일 은행 냄새에 시달린 기분이었다. 처음 사업 시작할 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리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만 해도 정부지원사업이나 소상공인정책자금 같은 단어들은 내 인생과 아주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임대료가 오르고 재료비까지 덩달아 치솟으니 현실이 눈앞에 닥치더라. 처음에는 중소기업청년지원금이나 뭐 그런 쪽을 기웃거려봤는데, 조건이 하나같이 까다롭고 서류 준비하다 보면 이미 기운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서류 뭉치와 대기 시간의 늪
결국 정책자금 좀 알아보겠다고 가까운 시중은행 지점에 들렀다.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는데, 앞에 대기자가 15명이나 있었다. 평일 낮인데도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내 차례가 되어 상담 창구에 앉으니 직원이 내미는 서류 목록이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사업자 등록증, 부가세 과세표준증명, 임대차 계약서 사본은 기본이고, 뭐 이렇게 요구하는 게 많은지. 사실 대출이라는 게 내가 돈을 빌리는 건데도 왜 내가 죄인처럼 굽실거려야 하는 건지 가끔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특히 시설자금대출 상담을 하려니 서류를 더 꼼꼼히 보더라. 상담 시간만 40분이 넘게 걸렸는데, 그동안 정작 내가 궁금했던 금리나 한도는 명확하게 듣지 못했다. 그냥 ‘심사해봐야 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숫자의 괴리감
상담 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대출 가능 금액이 예전보다 조금 상향 조정되었다고는 한다. 기존에는 3,000만 원 정도가 최대치였던 항목들이 이제는 5,000만 원까지는 어떻게 비벼볼 수 있다는 식인데, 막상 내 통장 상황이나 신용 점수를 생각하면 그 최대치를 다 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뻔히 보인다. 요즘 다들 힘들다고 하는데, 정말 개원이나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뉴스에서 나오는 거랑은 다르다. 주위에는 무리하게 대출받아서 일단 시작하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로 이자 무서워서 빚 안 지고 버티다가 문 닫는 사람도 있다. 나도 솔직히 대출이자 갚느라 집값 상승분을 기대하고 사는 건 아닌데, 그냥 당장 이번 달 월세랑 직원 월급 걱정 없는 게 소원이다.
돌아오는 길에 든 생각
은행을 나와서 다시 가게로 돌아오는 길에 커피 한 잔 사 마셨다. 4,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이 평소보다 왜 이렇게 비싸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5,000만 원을 빌린다고 치면 한 달 이자가 얼마고, 그걸 갚으려면 하루에 몇 그릇을 더 팔아야 하나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게 된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준다거나 대출을 도와준다고 해도, 결국 그건 나중에 다 내가 갚아야 할 빚이다. 그런데도 그 빚을 지기 위해서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쏟아야 하나 싶어서 현타가 오는 날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법인대출이니 뭐니 해서 큰돈을 굴리기도 한다는데, 내 입장에선 그저 몇천만 원의 대출 승인 문자가 간절할 뿐이다.
남겨진 숙제들
집에 와서 서류를 다시 정리하는데 아직도 빠진 게 몇 개 있다. 지방세 납세 증명서 같은 건 인터넷으로 금방 뗄 수 있지만, 은행에서 요구하는 특정 양식의 재무제표는 또 어디서 어떻게 뽑아야 하는지 막막하다. 세무사 사무실에 전화하면 또 비용이 발생할 텐데, 벌써부터 돈 나갈 곳이 눈에 보인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당장 내일 가게 문을 열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다시 노트북을 켠다. 정책자금이니 뭐니 다 복잡하고 어려워서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덜 힘들고 덜 복잡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오늘도 서류 뭉치를 옆에 두고 잠을 청하려는데, 과연 다음 주에 은행에 다시 들고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구덩이를 더 깊게 파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재무제표 양식 때문에 정말 답답할 것 같아요. 제가 작년에 비슷한 고민을 할 때도 비슷한 양식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