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퇴직하고 나니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지더군요. 아침마다 등산복 입고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거실에 앉아 TV 채널만 돌리다 보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러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늙어가는 건가 싶어서 말이죠. 그래서 뭐라도 해보자 싶어 집수리 기술을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요즘 유튜브 보면 50대 창업이니 뭐니 해서 소자본으로 기술 배우라는 영상이 참 많잖아요. 저도 그중 하나를 보고 혹해서 덜컥 교육기관을 찾았습니다.
집수리 교육 현장의 현실적인 풍경
제가 찾아간 곳은 서울 근교의 작은 기술학원이었습니다. 수강료가 대략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였는데, 적은 돈이 아니었죠. 등록하던 날 입구에서부터 왠지 모를 서먹함이 느껴졌습니다. 강의실에 들어서니 저처럼 이제 막 은퇴했거나 조기 퇴직한 사람들이 꽤 보였습니다. 다들 눈빛은 진지한데 손은 어색하고, 공구 잡는 법부터 배우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실습 중에 드라이버로 나사를 박다가 벽지를 찢어먹기도 하고, 실리콘 쏘는 게 마음대로 안 돼서 손에 잔뜩 묻히고 쩔쩔맸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형님은 손재주가 좋으셔서 금방 따라 하시는데, 저는 보고 있는데도 손이 굳은 것 같아 속이 타더라고요. 교수님이 옆에서 몇 번이고 설명해주시는데, 돌아서면 까먹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공구함 하나 채우는 게 시작이더라
기술 좀 배운다고 바로 창업할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들이 늘 하시는 말씀이 ‘공구 값이 절반이다’라는 거였어요. 실제로 하나둘 사 모으기 시작한 공구들 가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임팩트 드릴부터 시작해서 레이저 레벨기, 각종 부속품까지 사다 보니 얼추 200만 원은 더 들어간 것 같습니다. 다이소에서 파는 천 원짜리 공구랑은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당근마켓에서 중고로 알아보고 발품 팔았는데, 새것 사기엔 부담스럽고 중고는 상태가 복불복이라 고르는 것도 일입니다. 이제는 집 한구석이 아예 작은 작업실처럼 변했는데, 정작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니 막상 집 안 고장 난 곳이 왜 이렇게 안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작정 시작하기엔 걸리는 것들
사람들은 무자본 창업이니 뭐니 하지만, 결국 사업자 등록 내고 홍보하고 하다 보면 돈 들어갈 구멍은 끝도 없이 나옵니다. 당장 당근마켓이나 동네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볼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모르는 사람 집에 들어가서 수리해준다는 게 쉬운 일인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누수라도 잘못 잡으면 어쩌나, 변기 설치하다 깨트리면 어쩌나 하는 사소한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유튜브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깔끔하게 성공하는 모습은 어디까지나 편집된 영상이라는 걸 배우면서 뼈저리게 느낍니다. 땀 뻘뻘 흘리며 좁은 싱크대 밑에 들어가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하니, 이게 노후 대비인지 아니면 그냥 몸 사서 고생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정책자금 알아보는 과정의 피로감
그래도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소상공인 정책자금이나 이런 걸 조금씩 기웃거려 보고는 있습니다. 서류 준비하는 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닙니다. 사업계획서라는 걸 써보는데, 30년 넘게 직장 생활하면서 보고서 꽤나 써봤다고 생각했는데도 이건 차원이 다르더군요. ‘이게 과연 수익이 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마다 답이 잘 안 나옵니다. 정부지원 정책은 왜 이렇게 조건이 까다로운지, 조건 맞추려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것 같기도 하고요. 그냥 기술 하나 익혀서 아는 사람 집이나 고쳐주며 용돈 벌이하는 게 속 편한 것 같기도 합니다.
기술은 남았지만 결론은 아직
지금은 일단 배웠으니 몸에 익히는 중입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동네 친구도 만났는데, 그 친구는 그냥 기술 배워서 취업하는 게 낫다고 하더군요. 창업이라는 게 사람 상대하는 일이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면서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창업과 취업 사이에서 또 갈등하게 됩니다. 기술이 없던 때보다는 낫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닙니다. 나중에 정말로 작은 가게라도 하나 내게 될지, 아니면 그냥 내 집 고치며 사는 ‘취미형 기술자’로 남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오늘도 공구함 정리하면서 마음만 복잡해지네요.
실리콘 쏘는 게 정말 쉽지 않다고 하셨던 부분에 공감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묘사가 와닿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