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계획서 대행 맡겼다가 서류만 두 번 고쳤다

사업계획서 대행 맡겼다가 서류만 두 번 고쳤다

처음에는 혼자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처음 창업을 결심했을 때는 사실 정부지원 사업이라는 게 이렇게 복잡한 과정일 줄은 몰랐다. 그냥 좋은 아이디어 하나랑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사업계획서라는 걸 써보려고 화면 앞에 앉으니 머리가 하얘졌다. 특히 자금 계획 부분에서 막혔는데, 소액 투자를 유치하려고 해도 근거가 없으니 아무것도 적을 수가 없었다. 요즘 무인카페 창업이 유행이라길래 나도 상권 분석 좀 하고 엑셀로 표를 그려봤는데, 이게 정말 사업계획서가 될 수 있을까 싶어 며칠을 고민만 하다가 결국 외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대행 업체는 생각보다 훨씬 비싸고 건조했다

검색창에 사업계획서 대행을 치니까 광고가 수두룩하게 떴다. 몇 군데 전화를 돌려보니 견적이 천차만별이었다. 저렴한 곳은 50만 원대부터 시작했지만, 제대로 하려면 최소 200만 원은 줘야 한다는 곳도 있었다. 사실 6천만 원 정도를 시드머니로 생각하고 시작하는 입장에서 200만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결국 중간 정도 가격인 120만 원을 부르는 곳과 계약을 했는데, 입금하자마자 태도가 조금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내가 직접 시장 조사를 해서 보낸 자료들은 거의 무시당했고, 자기들이 가진 표준 템플릿에 내 내용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서류 수정만 세 번을 반복하게 된 이유

결과물을 처음 받아보고 정말 당황했다. 내가 구상했던 무인카페의 핵심인 지역 밀착형 커뮤니티 기능은 싹 사라지고, 그냥 어디서나 볼 법한 뻔한 수익 모델로만 도배되어 있었다. 이걸 그대로 제출했다가는 면접에서 질문 하나도 제대로 대답 못 할 게 뻔했다. 결국 수정을 요청했는데, 대행 업체 측에서는 이게 가장 통과 확률이 높은 구성이라며 오히려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내 사업인데. 결국 밤을 새워서 내 주장을 다시 정리해서 보냈다. 그렇게 서류를 주고받기를 세 번, 솔직히 이럴 거면 차라리 그 돈으로 화장품 도매몰 운영을 알아볼 걸 그랬나 하는 후회까지 들었다.

업종 변경과 창업 사이의 모호한 경계

솔직히 이번에 느낀 건 정부지원 사업은 철저하게 ‘서류상의 숫자’를 증명하는 게임이라는 점이다. 내가 얼마나 이 사업을 사랑하고 열정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더라. 그저 이 사업이 정부가 원하는 기준에 부합하는지, 예산은 효율적으로 배분되는지가 핵심이었다. 강원도나 다른 지자체에서 창업 도시를 만든다고 홍보하는 기사들을 보면 참 그럴싸해 보이는데, 실제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행정적인 문턱이 정말 높게만 느껴진다. 어떤 곳은 프랜차이즈 가맹점 형태로만 지원을 해주기도 하는데, 나는 개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서 자꾸 충돌이 생기는 것 같다.

대행을 마친 지금도 여전히 찜찜한 기분

결국 사업계획서는 완성했다. 업체 측에서 준 서류가 내 손을 거쳐 어느 정도는 사람 냄새나는 내용으로 바뀌었지만, 이게 정말 좋은 결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며칠 전에는 아예 앱개발까지 겸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도 받았는데, 당장 6천만 원으로 카페 하나 차리기도 벅찬 상황에서 너무 큰 욕심인 것 같아 거절했다. 요즘은 소액 투자나 상호금융 대출을 알아보고 있는데, 막상 내 돈을 들이려니 사업계획서에 적힌 화려한 수치들이 다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원 사업에 합격한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서류가 통과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중에 이 경험이 밑거름이 될지, 아니면 그냥 쓴 수업료로 남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