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를 다 읽어봐도 서류 더 달라는 연락만 올 때

공고를 다 읽어봐도 서류 더 달라는 연락만 올 때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사무실 한구석에서 굴러다니던 낡은 인쇄기를 새로 바꾸려다가 우연히 공장 운영자금 지원 공고를 봤다. 처음엔 그냥 가벼운 마음이었다. 뭐라도 조금 보태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 지금 생각하면 그게 그렇게 순진한 생각이었나 싶다. 은행 대출 문턱이야 워낙 높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으니, 차라리 정부 지원 쪽을 먼저 알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계산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아주 큰 착각이었다.

서류 뭉치를 들고 은행에 갔던 날

지점 앞에 도착하니 벌써 진이 다 빠졌다. 사업자등록증부터 시작해서 재무제표, 각종 납세증명서까지 챙겨간 서류만 두툼한 서류봉투로 하나 가득이었다. 은행 대창구 앞에 앉으니 직원이 서류를 훑어보는데, 표정이 생각보다 영 시원찮았다. “사장님, 이거 말고 작년도 부가세 과세표준증명원도 있으셔야 하는데요.” 그날 나는 결국 대출 신청조차 못 하고 돌아왔다. 그때 든 생각은 ‘아, 내가 뭘 놓쳤구나’ 싶은 게 아니라 ‘대체 얼마나 더 떼어 와야 하는 거야’ 하는 짜증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만들어야 하나 싶어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소상공인 지원금 검색의 늪

집에 와서 새벽까지 검색창을 켰다 껐다 했다. 소상공인 정부지원금이라고 치면 나오는 수많은 블로그와 뉴스 기사들. 대전의 온통대전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필수의료 배상 보험료 지원 같은 것까지, 온통 세상이 지원금 이야기인 것 같은데 정작 내가 신청할 수 있는 건 보이지가 않았다. 어떤 공고는 이미 마감이 지났고, 어떤 건 자격 요건에서 건강보험료 납부 금액으로 컷당했다는 후기가 수두룩했다. 나도 건보료 기준으로 아슬아슬하게 걸리는 것 같아서 괜히 마음만 졸였다. 누군가는 15만 원, 100만 원씩 민생 지원금을 받는다는 소식을 보면, 이게 나랑은 상관없는 먼 나라 이야기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만 뒤처지는 기분이 들어 묘하게 불쾌했다.

보증서 대출 상담의 불편한 기억

결국 보증기관에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상담원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내용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갔다. “현재 사업장 매출 규모로는 운전자금 한도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이 한마디가 참 뼈아프더라. 분명히 내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상대는 내 상황이 아니라 시스템상의 숫자로만 판단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 30분 정도 통화했나. 결국 대출 한도 조회조차 제대로 못 하고 전화를 끊었다. 상담원이 제시한 대안은 내가 감당하기엔 이율이 너무 높거나 조건이 까다로웠다. 차라리 지금 인쇄기 안 바꾸고 그냥 쓰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경정청구 수수료와 전문 업체의 유혹

요즘은 경정청구니 뭐니 하면서 수수료를 떼어가는 업체들도 엄청나게 연락이 온다. 처음엔 뭣도 모르고 다 들어보려 했다. 그런데 수수료가 환급액의 20%니 30%니 하는 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정말 내가 받아야 할 돈을 찾아서 주는 건지, 아니면 세무서에서 내 줄 돈을 자기들이 중간에서 가로채는 건지 경계가 모호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남의 손 빌려서 일 벌였다가 나중에 세무 조사라도 나오면 어쩌나 싶어서 말이다. 그냥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게 속 편하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기분

결국 몇 달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지원금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은행에서 퇴짜 맞고, 상담원하고 실랑이하고, 서류 정리하느라 시간 낭비한 것만 생각하면 억울하기도 하다. 사실 애초에 큰 기대를 안 했어야 했다. 정부에서 도와준다는 공고가 그렇게 쉽게 문을 열어줄 리가 없는데, 왜 그때는 그렇게 간절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가끔 관련 공고가 뜨면 클릭은 해보지만, 예전처럼 꼼꼼하게 읽지는 않는다. 그냥 “아,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창을 닫아버린다. 그게 마음 편하다. 다음에 또 사업 운영하다가 막히는 순간이 오면, 그때는 또 다른 대안을 찾아야겠지. 하지만 적어도 이번처럼 무작정 뛰어들지는 않을 것 같다. 확실한 건, 정부 지원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멀리 있었다는 점이다.